日本雜話/☆常識↗

"눈속임의 美學" 고이즈미 정계은퇴의 배경

AKAINC 2008. 9. 29. 19:14

 

일본 총리중에 정신병자 출신이 있다?

 

누구냐하면 우리에게도 다양한 의미로 잘 알려진 고이즈미다.

고이즈미는 정신병원에 약 2달간 입원(수용)을 했었다고 한다.

1967년4월 부녀자 폭행 사건을 범한 직후 고이즈미(小泉純一郎)는 정신병원으로 유명한

한도립 병원에 두달간 수용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병명은 정신분열증! 그러나 후에" 통합 실조증"으로 병명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동년7월7일 런던으로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을 떠났었다.

당시 재학중이던 게이오대학(慶応大学)은 휴학계를 낸것이다.

공식프로필에는 졸업후 유학이라고 되어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부녀자를 때렸고, 잡아서 조사하다보니 정신이 이상한 것으로 밝혀졌던지,

아니면 잘 만난 부모덕으로 교도소를 벗어나려 정신병원에 입원 시켰던 것이다.

 

퇴원하자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또?

 부모 잘 만난 덕에 영국 런던으로 떠났던 것이다.

물론 고이즈미 가문에서도 극비로 하고있고,일본의 메스컴도

"총리가 정신병자였다~"! 할 수도 없을 것이지만 분명한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데,이런 과거를 가지고있는 고이즈미가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것은 무었때문이 었을까?

 

당시 각 일본언론에서도 고이즈미가 총리경선에서 그리고 총리로 총리에서 중의원 해체등의

그의 행동을 "고이즈미 극장"이라고 했을 정도로 다양한 연출을 했었다.

일본인들도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했었더라면, 

최소한 그는 분명 일본인들의 상식에서는 벗어나는 행동을 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시의 고이즈미에 일본인들은 취해있었다.

혹은 최면상태였을 수도 있다.

 

거품경제후 10여년이상 계속되는 침체일로에 일본국민들은 지쳐있었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정치와 자민당에 관심도 기대도 사라진 상태였다고 할 수있다.

 

이런 것들을 "천재에 가까운 비상한 머리였는지? "

아니면 "본성이 미친 짓이라도 범하고 보는 자였는지?"는 알 수없지만

결과적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맞아 떨어졌던 자가 바로 고이즈미였던 것이다. 

 

그의 인기비결은?

 

1>그의 연설의 특징은 "단순했고,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당연히 일본국민은 고이즈미의 연설은 알아 듯기가 쉬웠다.

확실한 자기표현에 어색한 일본인들의 특성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정치인들의

연설은 끝까지 듣는 다는 것은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힘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끝까지 들어도 확실하게 다가오는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2>행동(실천)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혹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에 오랜 동안 익숙해버린 일본인들은

 "평화 치메(보께)"라고, 그리고 자민당과 정치에 무관심 할때,

 

자신이 소속된 기존 자민당을 부셔버린다.

 

우편(우정;郵政)체제를 민영화한다.

 

8,15일에 총리로 야스쿠니 참배한다등등...,

 

즉,알아듣기 쉬웠고,그리고 말을  실제로 실천했던 것이다.

 

결과 내외부와의 다양한 문제점이 들어났었지만 한동안 고이즈미 마법에

일본국민은 깨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총리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일본국민의 관심과 인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왜?고이즈미가 갑자기 정계은퇴를 선언 했을까?

 

일본국민이 조금씩 최면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요란한 잔치가 끝나고 고이즈미가 막을 접고나니

결과는 고이즈미식의 변화로 인해 향상된 것은 별로없고,오히려 다양한 상처와

문재점이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표출되었던 것이다.

고이즈미가 만든 고이즈미칠더런(아이들)로 불리는 이들이 현재도80여명이 있지만,

고이즈미가 총재선거에 추천한 고이께(小池百合子)는 총46표 밖에 얻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방표는 고이즈미의 선거구를 포함해 획득한 표는 0 표였던 것이다.

 

고이즈미 추종자들은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만개해 있을 때 보다 한 순간에 지기때문이다."이라는

고이즈미의 말을 인용하여 이번 정계은퇴를

"남자의 美" 혹은 "마무리가 깨끗한 정치인"등으로 미화하고 있다.

 

고이즈미가 은퇴를 표명하면서

 "의원으로서의 능력을 수상 재직시절에 전부 쏟아 부었다."

그래서 정계은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죽을 때까지 정치활동은 하겠다!"

즉,일선에서의 정치활동은 하지 않겠지만 뒤에서 실세로서는 남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실상은

 

ⓐ 자신의 모양새 갖추기;

결국 고이즈미는 향후에 자신의 선거구에서 조차도 선거결과를 예측할 수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혹시 낙선해서 창피당하는 것보다 영향력이 남아 있을 때 자신의 모양새 갖추려는 의도이다.

 

ⓑ아들에게 세습하기;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주기에도 조금이라도 자신의 영향력이 있을 때가 좋다는 점이다.

자신이 선거에 패했을 경우보다는 아들이 패했을 경우가 얻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젊기에 다음 기회를 노릴 수가 있고,또한 자신이 받은 혜택인 "부모 잘 만난 해택"을

아들도 누릴 수있다는 것이다. 

 

눈속임의 미학은 여전히 진행형이고,

따라서 그의 미친 짓은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다음 선거에서 고이즈미가 아들의 지지 연설에서

"내 아들은 기인(奇人)도 변인(變人)도 아닌 정상인 아들입니다!~ "

그러니 "한표 부탁합니다~!"라는 연설을 할 때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즉,한 국가의 정치인 혹은 전임 총리로서 국가의 장래와 국민을 위한

측면에서가  아니라 한 집안의 영광과 목적만이 은퇴배경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고이즈미뿐만 아니라 일본의 정치가는 부모나 처가라도

잘만나야 되는 폐쇄집단이 이미 전통처럼 되어버렸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그런 지도자들 아래에서 속고있는 국민들이고,

또한 주변국가들도 이웃나라의 정치가 현존하는 국가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의 낙후된 틀에서 께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